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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감동-길거리의 철학자
작성자 이기룡 작성일 16/02/12 (14:03) 조회수 1189



그 버스 정류장에는 몇 년째 ‘구두 대학 병원’ 이라는 간판이 붙은 구두 수선집이 있었습니다.
좁은 공간 안에서 언제나 곱추 아저씨가 열심히 구두를 고치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종식이가 처음 이 구두 병원에 들른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무렵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종식이는 한쪽만 닳아버린 구두 밑창을 갈기 위해 구두 병원에 들어섰습니다.
먼저 온 아가씨가 구두를 고치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종식이가 아저씨에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이 구두 밑창 좀 갈아주세요.”
“네, 그러죠. 좀 앉으세요.
“자리에 앉자마자 종식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죠? 수선비는 얼만가요?”
아저씨가 대답했습니다.
“시간은 37분쯤 걸리고 요금은 7천 원입니다.
지금이 7시 13분이니까 정확히 7시 50분 에 끝나겠네요.”
종식이는 좀 놀랐습니다. 30분도 아니고, 40분도 아닌 37분이라니
“37분이라구요?”
“왜요. 못 믿으시겠어요?”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제가 구두 고친 게 벌써 20년이 넘었어요. 척하면 삼천리죠.”
알았어요.
“종식이는 먼저 온 아가씨 옆에 앉아 아저씨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계속 지켜보니 신기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우선 아저씨는 구두 고치는 모든 기계를 불편한 자기 몸에 맞춰 개조해서 쓰고 있었습니다. 구두 뒤축을 가는 회전 숫돌은 왼쪽 발 앞에 있는 페달을 밟으면 나오게 되어 있었고, 못을 박을 때 필요한 쇠받침대는 오른쪽 페달을 밟으면 몸 앞으로 나오게 되어있었습니다.
머리 위에도 끈이 여러 개 달려 있어서 어떤 끈을 잡아 당기면 사포가 내려오고, 어떤 끈을 잡아 당기면 접착제가 담긴 통이 내려오며, 어떤 끈을 잡아 당기면 펜치가 내려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종식이가 말을 건넸습니다.
“아저씨,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다 하셨어요?”
“일을 하다보니까 하나씩 아이디어가 생겼지요.
그리고 내 몸에 맞게 연장들을 고치는 게 재미 있더라구요. 이것도 발명이죠. 남들이 알아주지는 않지만, 뭐 어디 알아줘야만 맛인가요? 내가 즐겁고 편하면 되는 거지.”
종식이는 순간 멈칫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아저씨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뭔가 철학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듯 햇습니다.
아저씨가 계속 말을 했습니다..
“내가 편하고 즐거워야 손님들도 즐거워하시죠.
종식이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어쨌든 대학 졸업 후 어렵게 들어간 첫 직장은 조그만 여행사였습니다.
그리고 난 내 일에 만족합니다.
“명문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변변한 자격증 하나 없었기 때문에 취직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졸업반 때 열심히 입사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서류심사에서 떨어졌습니다.
종식이는 이때부터 세상에 대한 불만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월급도 별로 많지 않았고 언제나 귀찮은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매일 매일 수없이 쏟아지는 짜증나는 문의전화, 끝도 없는 서류처리, 출발 하루 전 여행을 취소하는 사람들, 남의 여권 수백 장을 들고 대사관 앞에 줄을 서야 할 때 느껴지는 자괴감, 서로에 대한 배려가 없는 동료들 …… .
이런 것들을 떠올리니 종식이는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구두닦이 아저씨에겐 또 다른 신기한 점들이 많았습니다. 아저씨는 일을 하면서 계속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흥얼거렸습니다. 가끔씩 눈을 지그시 감기도 했고, 머리를 지휘자처럼 흔들기도했습니다.
‘구두 닦는 아저씨와 모차르트’ 를 떠올리니 도무지안 어울리는 모습이었습니다.
“클래식 좋아하세요?”
“왜 내가 클래식 들으니까 이상해요?”
당황한 종식이가 얼버무렸습니다.
“저도 좋아하거든요.”
아저씨의 풍자적인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클래식은 가사가 없어서 좋아요.
가사가 있는 노래를 들으면 자꾸 옛 사연도 떠오르고, 노래 가사가 다 내 얘기 같고·
그런데 클래식은 가사가 없으니까 곡만 음미할 수 있잖아요.
“종식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건 그렇네요.
“그러고 보니 아저씨의 왼편에는 시집 한 권 펼쳐진 채 놓여있었습니다.
“시도 읽으시네요.” 종식이가 눈이 동그래서 자꾸 물어보자 아저씨는 마치 동생에게 이야기하듯 말을 슬슬 낮추기 시작했습니다.
“시도 좋아하지. 소설은 한 가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너무 많은 말을 해.
결국 한 가지 메시지를 위해 사람도 죽이고 헤어지게도 만들고······.
하지만 시는 단 한마디로 많은 걸 전해주잖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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